장난하다 골절, 귀에 대고 XX야···이것도 학폭인가요? 교사 출신 변호사가 본 기준은
2026-07-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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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아이들끼리 몸싸움하다 한 아이 팔에 살짝 멍이 들었다. 두 아이 모두 “장난”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다친 아이의 엄마는 “학교폭력”이라고 주장한다. 학교폭력일까, 아닐까.
문자원 변호사(34)는 “학교폭력으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피해가 발생해야 학교폭력인데, 피해자가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피해가 성립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것 중 하나가 이게 장난인지 학교폭력인지예요. 가해의 의도성, 피해의 정도, 반복성 여부 등도 판단 요소이지만 제일 중요한 건 피해 학생이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예요. 그래서 원치 않는 장난일 경우 거부 의사를 명백히 표시하는 게 중요해요. 그게 장난이 아닌 피해로 여겼다는 증거가 되거든요.”
문 변호사는 최근 출간된 <이것도 학교폭력인가요?>(PMB)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이력이 한몫했다. 그는 원래 교사였다. 수도권 지역 초등학교에서 3년간 일하다 법조인으로 진로를 바꿨다. 이후 6년간 학교폭력 사건을 주로 맡아왔다. 강동송파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진로를 전환한 건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만 덕분에 학교 안과 밖 양쪽에서 학교폭력을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그는 ‘이것도 학교폭력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형법상 범죄에 해당하면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형법상 범죄가 아니니 학교폭력은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어요.”
우선 폭행·상해·과실치상·약취·유인·감금·협박·갈취·모욕·명예훼손·재물손괴 등에 해당하는 행위는 학교폭력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끼리 장난으로 시작한 레슬링이 골절 사고로 이어졌어요. 학교폭력이 아닌 것 같죠? 그러나 형법상 과실치상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골절을 피해로 받아들이지 않을 아이는 없을 거예요. 설령 있다 해도 피해의 중대성 때문에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범죄는 아니지만 학교폭력에는 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귀에 대고 ‘XX야’라고 속삭이는 행위는 모욕죄는 아니에요. 공연성(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없거든요. 그러나 학교폭력에는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면요.”
이 같은 기준은 학교폭력 관련 법률과 판례에 따른 것이다. 실제 현장에선 이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폭위에서 학교폭력 여부와 조치 수위를 결정하는 건 판사가 아닌 학부모 등 심의위원들이기 때문이다.
학폭위의 학부모 위원 비율은 ‘3분의 1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문 변호사는 “실제로 가보면 대부분 학부모 위원들 위주로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열과 성을 다하지만 전문성은 아무래도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실수로 다른 학생을 밀어서 다치게 한 유사 사건이 교육지원청별로 결과가 180도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있었어요. 한 위원회에선 학교폭력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다른 위원회에선 학교폭력으로 인정돼 학급교체 처분까지 내려졌어요.” 그는 유사 사건의 다른 결론을 두고 “학교폭력이 결국 소송전으로 비화하는 한 원인”이라고 봤다.
“무조건 ‘법대로’ 하기보단 교육 목적, 화해 유도 등에 더 무게를 두는 게 바람직하긴 합니다. 그러나 같은 사안에서조차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가해나 피해 당사자들이 학폭위의 결과를 신뢰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는 그래서 학폭위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단에게 가이드라인이 주어지고 주심 판사가 안내와 검증 역할을 하듯, 학폭위 운영에서도 비슷한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학부모 위원들에게 사전 교육 등을 제공하고 형식적인 전문위원(변호사 등)의 역할을 실질화할 방안이 필요한 것 같아요.”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학교폭력 사건의 특징 중 하나라고 했다. “아이들이 녹음을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걸 권장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피해 학생 진술의 구체성이나 일관성, 주변 학생들의 목격담 등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단지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쉽게 피해를 무시해서는 안 되죠. 그래서 신고 초기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진술을 수집하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의 전문성과 열의도 중요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법은 분쟁으로 비화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모의 대처가 중요하다고 했다. 자녀가 신고를 당하거나 피해를 봤을 때 아이 말만 믿어서도 안 되고, 반대로 무조건 다그쳐서도 안 된다고 했다.
“처음엔 ‘무슨 일이 있었어?’ ‘뭐가 힘들었어?’ 같은 열린 질문을 하세요. 그 뒤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으로 확인 질문을 하세요. 반복적으로요. 앞뒤가 안 맞거나 답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부분을 가려내세요. 일관된 부분 위주로 사실관계를 정리하셔야 합니다.”
그 결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빨리하는 게 좋다고 했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부분, 억울한 부분에 대해 인정하시는 건 조심하셔야 해요. 나중에 번복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신속한 사과를 위해선 담임교사 역할이 지금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과와 용서가 이뤄지려면 누군가가 소통과 중재의 역할을 해줘야 해요. 그 적임자는 담임교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선 학교폭력 전담교사가 절차를 진행하고 담임교사들은 거의 개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임교사들이 두려움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관련 교육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낮의 열기가 물러간 아비뇽의 여름밤, 고도(古都)의 심장 교황청 무대에 한강의 문장이 울려 퍼졌다.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어를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한 가운데, 15일(현지시간)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낭독공연 <새(Oiseau)>가 교황청 궁전 명예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프랑스 연출가 줄리 델리케가 소설의 1장을 무대화한 이 공연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을 한국 배우 이혜영과 프랑스의 이자벨 위페르가 두 개의 언어로 들려주는 낭독극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어둠이 내려앉아 불을 밝힌 교황청 무대는 공연 시작 전부터 1900석 규모의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로 장관을 이뤘다. 중세 고딕 양식의 교황청 돌벽을 배경으로 펼쳐진 무대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자아냈다.
원작은 주인공 경하가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홀로 남겨진 인선의 앵무새를 구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제주 중산간의 인선 집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다. 경하는 인선의 가족이 겪은 제주4·3의 참혹한 역사를 접하며 깊은 애도의 시간을 갖게 된다.
작은 새소리와 함께 흰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 두 낭독자는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주고받으며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인선이 입원한 병원으로, 폭설이 내리는 제주로,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수십년 전 그날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낭독극이라는 형식이 무색할 만큼 두 배우는 절제된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경하와 인선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무대 뒤 돌벽에 프랑스어·영어 자막이 차례로 새겨지며 하나의 기억과 감정으로 이어졌다.
공연 끝 무렵, 한강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흰옷을 입은 한강은 제주4·3과 한국전쟁 초기 민간인 학살의 기억이 맞닿는 대목을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전쟁과 트라우마, 아이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의 담담한 목소리에 객석은 숨을 죽였다.
약 90분간 진행된 공연은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한강과 이혜영, 위페르는 무대 인사를 마치고 퇴장한 뒤에도 박수가 잦아들지 않자 다시 무대 앞으로 나와 객석을 바라보며 5분 가까이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빠져나오던 프랑스 관객 크리스 마르탱은 “한국어를 소설로 듣는 독특한 경험이었다”며 “한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슬픔과 애도의 감정이 충분히 전해졌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극단 INDEX의 다리아 데플로리안이 연출한 <사랑이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도 18일까지 카르멘 수도원 회랑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 역시 <작별하지 않는다>를 각색한 연극으로, 데플로리안은 배우 모니카 피세두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데플로리안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연극으로 옮긴 데 이어 다시 그의 작품을 무대화했다. 이번 작업을 준비하며 모니카 피세두와 함께 제주를 찾아 4·3평화공원을 방문한 그는 “제주의 풍경과 바다를 본 뒤 이탈리아로 돌아와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작품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 작품에 매료된 이유로 “폭력을 다루는 방식”을 꼽았다. 데플로리안은 “한강은 사적인 폭력과 국가가 행사하는 제도적 폭력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지 않는다”며 “그 두 층위를 끊임없이 교차시키는 방식이 매우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문자원 변호사(34)는 “학교폭력으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피해가 발생해야 학교폭력인데, 피해자가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피해가 성립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것 중 하나가 이게 장난인지 학교폭력인지예요. 가해의 의도성, 피해의 정도, 반복성 여부 등도 판단 요소이지만 제일 중요한 건 피해 학생이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예요. 그래서 원치 않는 장난일 경우 거부 의사를 명백히 표시하는 게 중요해요. 그게 장난이 아닌 피해로 여겼다는 증거가 되거든요.”
문 변호사는 최근 출간된 <이것도 학교폭력인가요?>(PMB)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이력이 한몫했다. 그는 원래 교사였다. 수도권 지역 초등학교에서 3년간 일하다 법조인으로 진로를 바꿨다. 이후 6년간 학교폭력 사건을 주로 맡아왔다. 강동송파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진로를 전환한 건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만 덕분에 학교 안과 밖 양쪽에서 학교폭력을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그는 ‘이것도 학교폭력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형법상 범죄에 해당하면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형법상 범죄가 아니니 학교폭력은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어요.”
우선 폭행·상해·과실치상·약취·유인·감금·협박·갈취·모욕·명예훼손·재물손괴 등에 해당하는 행위는 학교폭력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끼리 장난으로 시작한 레슬링이 골절 사고로 이어졌어요. 학교폭력이 아닌 것 같죠? 그러나 형법상 과실치상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골절을 피해로 받아들이지 않을 아이는 없을 거예요. 설령 있다 해도 피해의 중대성 때문에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범죄는 아니지만 학교폭력에는 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귀에 대고 ‘XX야’라고 속삭이는 행위는 모욕죄는 아니에요. 공연성(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없거든요. 그러나 학교폭력에는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면요.”
이 같은 기준은 학교폭력 관련 법률과 판례에 따른 것이다. 실제 현장에선 이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폭위에서 학교폭력 여부와 조치 수위를 결정하는 건 판사가 아닌 학부모 등 심의위원들이기 때문이다.
학폭위의 학부모 위원 비율은 ‘3분의 1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문 변호사는 “실제로 가보면 대부분 학부모 위원들 위주로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열과 성을 다하지만 전문성은 아무래도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실수로 다른 학생을 밀어서 다치게 한 유사 사건이 교육지원청별로 결과가 180도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있었어요. 한 위원회에선 학교폭력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다른 위원회에선 학교폭력으로 인정돼 학급교체 처분까지 내려졌어요.” 그는 유사 사건의 다른 결론을 두고 “학교폭력이 결국 소송전으로 비화하는 한 원인”이라고 봤다.
“무조건 ‘법대로’ 하기보단 교육 목적, 화해 유도 등에 더 무게를 두는 게 바람직하긴 합니다. 그러나 같은 사안에서조차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가해나 피해 당사자들이 학폭위의 결과를 신뢰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는 그래서 학폭위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단에게 가이드라인이 주어지고 주심 판사가 안내와 검증 역할을 하듯, 학폭위 운영에서도 비슷한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학부모 위원들에게 사전 교육 등을 제공하고 형식적인 전문위원(변호사 등)의 역할을 실질화할 방안이 필요한 것 같아요.”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학교폭력 사건의 특징 중 하나라고 했다. “아이들이 녹음을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걸 권장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피해 학생 진술의 구체성이나 일관성, 주변 학생들의 목격담 등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단지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쉽게 피해를 무시해서는 안 되죠. 그래서 신고 초기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진술을 수집하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의 전문성과 열의도 중요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법은 분쟁으로 비화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모의 대처가 중요하다고 했다. 자녀가 신고를 당하거나 피해를 봤을 때 아이 말만 믿어서도 안 되고, 반대로 무조건 다그쳐서도 안 된다고 했다.
“처음엔 ‘무슨 일이 있었어?’ ‘뭐가 힘들었어?’ 같은 열린 질문을 하세요. 그 뒤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으로 확인 질문을 하세요. 반복적으로요. 앞뒤가 안 맞거나 답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부분을 가려내세요. 일관된 부분 위주로 사실관계를 정리하셔야 합니다.”
그 결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빨리하는 게 좋다고 했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부분, 억울한 부분에 대해 인정하시는 건 조심하셔야 해요. 나중에 번복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신속한 사과를 위해선 담임교사 역할이 지금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과와 용서가 이뤄지려면 누군가가 소통과 중재의 역할을 해줘야 해요. 그 적임자는 담임교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선 학교폭력 전담교사가 절차를 진행하고 담임교사들은 거의 개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임교사들이 두려움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관련 교육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낮의 열기가 물러간 아비뇽의 여름밤, 고도(古都)의 심장 교황청 무대에 한강의 문장이 울려 퍼졌다.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어를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한 가운데, 15일(현지시간)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낭독공연 <새(Oiseau)>가 교황청 궁전 명예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프랑스 연출가 줄리 델리케가 소설의 1장을 무대화한 이 공연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을 한국 배우 이혜영과 프랑스의 이자벨 위페르가 두 개의 언어로 들려주는 낭독극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어둠이 내려앉아 불을 밝힌 교황청 무대는 공연 시작 전부터 1900석 규모의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로 장관을 이뤘다. 중세 고딕 양식의 교황청 돌벽을 배경으로 펼쳐진 무대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자아냈다.
원작은 주인공 경하가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홀로 남겨진 인선의 앵무새를 구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제주 중산간의 인선 집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다. 경하는 인선의 가족이 겪은 제주4·3의 참혹한 역사를 접하며 깊은 애도의 시간을 갖게 된다.
작은 새소리와 함께 흰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 두 낭독자는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주고받으며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인선이 입원한 병원으로, 폭설이 내리는 제주로,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수십년 전 그날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낭독극이라는 형식이 무색할 만큼 두 배우는 절제된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경하와 인선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무대 뒤 돌벽에 프랑스어·영어 자막이 차례로 새겨지며 하나의 기억과 감정으로 이어졌다.
공연 끝 무렵, 한강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흰옷을 입은 한강은 제주4·3과 한국전쟁 초기 민간인 학살의 기억이 맞닿는 대목을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전쟁과 트라우마, 아이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의 담담한 목소리에 객석은 숨을 죽였다.
약 90분간 진행된 공연은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한강과 이혜영, 위페르는 무대 인사를 마치고 퇴장한 뒤에도 박수가 잦아들지 않자 다시 무대 앞으로 나와 객석을 바라보며 5분 가까이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빠져나오던 프랑스 관객 크리스 마르탱은 “한국어를 소설로 듣는 독특한 경험이었다”며 “한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슬픔과 애도의 감정이 충분히 전해졌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극단 INDEX의 다리아 데플로리안이 연출한 <사랑이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도 18일까지 카르멘 수도원 회랑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 역시 <작별하지 않는다>를 각색한 연극으로, 데플로리안은 배우 모니카 피세두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데플로리안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연극으로 옮긴 데 이어 다시 그의 작품을 무대화했다. 이번 작업을 준비하며 모니카 피세두와 함께 제주를 찾아 4·3평화공원을 방문한 그는 “제주의 풍경과 바다를 본 뒤 이탈리아로 돌아와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작품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 작품에 매료된 이유로 “폭력을 다루는 방식”을 꼽았다. 데플로리안은 “한강은 사적인 폭력과 국가가 행사하는 제도적 폭력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지 않는다”며 “그 두 층위를 끊임없이 교차시키는 방식이 매우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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