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미란다, 강화된 여성연대 … 20년 만의 ‘악마프라다2’ [플랫]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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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미란다, 강화된 여성연대 … 20년 만의 ‘악마프라다2’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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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숭
1시간 6분전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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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의 고전적인 스카이라인을 비추는 샷 위로 힘찬 걸음을 재촉하는 음악이 흐른다. 노래가 이어지고, 커리어우먼의 정석 같은 차림을 한 ‘앤디’(앤 해서웨이)가 어디론가 자신 있게 걸어간다.
20년 만의 속편으로 돌아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데이빗 프랭클 감독)는 첫 장면부터 향수를 자극한다. 2006년 개봉한 1편의 ‘톤 앤드 매너’를 그대로 살린 오프닝을 보고 있자면, 그 작품이 얼마나 아이코닉했는지를 자연히 회상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뉴요커, 패션업계 관계자, 입지전적인 리더 등을 꿈꿨던 과거의 자신까지도.
[플랫]20년 전, ‘커리어 우먼’ 폭 넓힌 ‘미란다’…“70대 여성보스 보여줄 수 있어 기뻐”
추억 소환은 잠깐이다. 영화는 우리의 기억 속 사회초년생 앤디와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리프)도 별 수 없이 20년의 세월을 비켜갈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앤디는 꿈꾸던 대로 인정받는 탐사보도 저널리스트가 됐고, 미란다도 편집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언론, 패션, 콘텐츠 업계는 전과 같지 않다. 기자상을 받으러 시상식에 참석한 앤디와 팀원들은 집단 해고를 문자로 통보받는다. 모회사의 적자 및 재정 위기가 이유다. <런웨이>는 자신들이 긍정적으로 소개한 기업에서 노동 착취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알고도 묵인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받는다. 미란다도 ‘캔슬 컬처(취소 문화)’를 피하지 못한다. 그를 조롱하는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도배된다. 영화는 실직한 앤디가 이미지 쇄신이 필요한 <런웨이>에 재입사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전편이 앤디의 성장담이었다면, 이번에 변화하는 건 미란다 쪽이다. 1편의 미란다는 능력이 뛰어나나 성질 고약하고 인간미 없는 상사였다. 2편의 미란다도 그러하다. 대외적으로 미란다는 아직도 우아하고 고압적인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다. 다만 그를 바라보는 앤디의 품이 넓어졌다. 20년간 리더의 자리를 지켜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만한 나이기 때문일 테다.
극은 앤디가 미란다의 진정한 신뢰를 얻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그럴수록 미란다는 기뻐하거나 좌절하는 기색을 꽤 솔직히 드러낸다. 이는 미란다를 더 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 덤덤히 그 곁을 지키는 ‘나이젤’(스탠리 투치)과 명품 브랜드 임원이 됐지만 푼수 같은 모습을 숨기지 못하는 ‘에밀리’(에밀리 블런트) 등 여전해서 반가운 캐릭터들의 모습은 영화를 안정적으로 떠받친다.
개봉 전 선공개된 영상에 일었던 ‘동양인 차별’에 대한 우려는 넣어둬도 좋을 것 같다. 앞서 20세기 스튜디오는 중국계 미국인 배우 헬렌 J 셴이 맡은 새 캐릭터 ‘진차오(Jin Chao)’가 앤디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짧게 공개했다. 셴은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판에서 여주인공 ‘클레어’ 역을 맡은 배우이기도 하다.
진차오가 안경과 체크무늬 셔츠 차림으로 무례한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모습에 서구권의 아시아인 고정관념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중국 온라인상에서는 보이콧 움직임도 일었다. 극 중 진차오가 동양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강화하는 캐릭터라면 합당한 비판이다. 하지만 전체 극에서 진차오는 오히려 과거 촌스러웠던 앤디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앤디의 비서가 된 그는 ‘빌런’보다는 ‘조력자’에 가깝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는 애당초 패션업계 관계자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져와 캐릭터를 만들면서도 그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패션업계는 진지하지 않다’는 통념을 비틀었던 작품이다. 진차오가 초반 ‘동양인 너드’처럼 묘사된 것은 맞지만, 극은 ‘저런 캐릭터는 비호감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오히려 새로운 등장인물과 엑스트라들에 대한 다인종 캐스팅이 눈에 띈다. <런웨이> 회의실과 패션쇼장 및 파티장에는 동양인을 비롯해 백인과 흑인 등이 두루 섞여 있다. 미란다가 시대착오적인 말을 할 때마다 ‘안 된다’고 눈짓을 주는 비서 ‘아마리’ 역에는 <브리저튼> 시즌2로 얼굴을 알린 인도계 영국 배우 시몬 애슐리가 활약한다. 중국계 미국인 배우 루시 리우와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수 겸 배우 레이디 가가도 인상적인 카메오로 등장한다. 상영 중, 119분, 12세 이상 관람가.
▼ 전지현 기자 [email protected]
20년째 데뷔하지 못한 영화감독 준비생 황동만은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미쳐버리기 직전인 인간이다. 영화 동아리 선후배 모임인 ‘8인회’에서 유일하게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짓눌려 산다. 모임 멤버인 박경세는 영화 데뷔에 성공했지만 황동만과 비슷한 심리를 갖고 있다. 누가 잘되면 괴롭고, 남의 실패에 안도한다.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무력감을 떨쳐내기 위해 허우적대는 인간들이지만, 내면에는 똑같은 감정이 들어 있다. 인정 욕구다. “불안하지 않은 거.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황동만) 우리는 흔히 불행을 가난이나 실패에서 찾지만, 더 깊은 불안은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성공이 때로는 내 실패보다 더 상처가 된다.
SK하이닉스 직원 “인생 달다”반도체 호황으로 격차를 체감성과가 구성원의 것만은 아냐사회 기여로 환원 방안 고민을
요즘 한국 사회에서 그 감정선을 제대로 건드린 게 반도체 산업이다.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시대의 최대 수혜자가 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연간 영업이익은 수백조원, 성과급은 수억원에 이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생 달다”는 SK하이닉스 직원의 한마디가 직장인 커뮤니티를 뒤흔든 것은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 비슷한 성적을 받고, 비슷한 노력을 했으며, 어쩌면 나보다 덜 치열해 보였던 친구가 어느 회사에 들어갔느냐에 따라 인생 경로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삼성전자 노조조차 “성과급을 올려달라”고, 삼성전자 주주들은 “그건 재산권 침해”라고 목청을 높인다.
<모자무싸>에 나오는 인물들도 비슷하다. 그들은 거대한 실패를 겪어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며 무너진다. 누구는 결혼했고, 누구는 승진했고, 누구는 집을 샀다. 나는 여전히 제자리인데, 세상은 나만 두고 앞으로 가는 것 같다. 현대인의 불행은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위치에서 비롯된다. “나는 왜 저 자리에 못 가지?”라는 생각이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든다. 부동산과 코인, 주식 등 자산 급등기에 만들어지던 ‘포모(FOMO·나만 뒤떨어진다는 두려움)’와 ‘벼락거지(상대적 박탈감)’라는 감정이 이제 직장으로 옮겨붙었다. 의학 계열 전공들의 앞글자를 딴 ‘의치한약수’에 반도체 학과를 추가한 ‘의치한반약수’라는 말이 등장하고, SK하이닉스 입사를 위한 학원까지 생겨났다.
문제는 그 역대급 돈 잔치가 우리 사회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반도체 공장 인근 상권은 기대만큼 살아나지 못했고, 성과급의 상당 부분은 소비 대신 투자처로 흘러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소득층(소득 상위 20%)은 새로 늘어난 소득 중에서 12%만 소비에 쓰고 나머지 88%는 저축이나 재투자를 한다. 주식과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간 돈은 다시 자산 격차를 키운다. 성장의 열매가 고루 퍼지지 않고 소득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K자형 성장이다.
기업의 성과를 무조건 사회적으로 재분배하자고 할 순 없다. 기업이 투명한 규칙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그 성과가 오롯이 구성원만의 것인가는 따져볼 문제다. 이번 호황은 AI라는 시대적 흐름과 국가적 지원, 수많은 협력사가 맞물려 돌아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특정 산업의 호황이 특정 집단만의 ‘신분 상승’으로 귀결될 때, 노동시장 전체는 더욱 계급화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안에서도 ‘삼성(전자 말고)후자’와 ‘SK(하이 말고)로우닉스’로 나뉘고, 중소기업 노동자는 아예 딴 세상 사람 같은 벽을 체감하는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기업은 성과급의 일부를 협력사와 공유하거나 사회적 기여로 환원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 또한 이 격차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하지 않도록 세제와 복지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소득만으로 존엄을 지킬 수 있고, 어느 산업에 속했느냐가 계급이 되지 않는 사회다. 누군가의 성공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무가치함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저 기뻐만 할 일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기성 미디어에는 돈독이 오른 기사들이 부쩍 늘었다. “우리 집은 부자일까? 35억은 있어야 상위 1%” “60억이 600억으로, 강남 빌딩 초대박” “유튜버 상위 10% 평균 수입 3억원” 같은 제목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 기사들은 대체로 같은 문법을 따른다. 제목 앞쪽에 큰 금액을 배치하고, ‘상위 1%’ ‘연봉 1억 이상’ 같은 상위 집단을 내세운다. 여기에 ‘잭팟’ ‘대박’ ‘부럽다’는 표현을 덧붙여 독자의 상실감과 비교 심리를 자극한다.
그동안 이런 ‘대박’의 주인공은 대개 부동산, 주식, 코인 같은 자산소득이거나 사업 성공을 통해 얻은 비임금소득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소득을 통한 횡재를 시장논리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위험을 감수한 투자의 결실이라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이때 운도 투자의 일부로 간주된다. 반면 고용을 통한 노동소득으로 눈을 돌리면 태도는 달라진다. 직원들에게 성과급이 돌아간다면 질문은 곧바로 “저 사람이 그만큼 받을 자격이 있나”로 바뀐다.
최근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은 이 이중 잣대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초과이익분배금이 크게 늘면서 직원들에게 막대한 성과급이 예고됐다. 생산직 직원들도 상당한 혜택을 받을 것으로 알려지자 채용 시장은 들썩였고, 반도체 전공 선호 역시 치솟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성과급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시작됐다. 일부 언론은 “하이닉스 생산직이 서울대 공대를 나와 현대차에 간 사람보다 특별히 더 노력했느냐”는 식의 커뮤니티 반응을 전하며 마치 이런 성과급이 불공정한 것처럼 말한다.
이 논쟁은 흥미롭게도 한국 사회의 공정성 감각이 어디에서 예민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에서 경영진이 수백억원의 보수를 받거나 주주들이 막대한 배당을 챙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반면 하이닉스 직원은 다르다. 그들은 같은 임금생활자의 범주 안에 있다. 나와 비슷하게 취업했고, 월급을 받고,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다. 바로 이 가까움이 박탈감과 불공정 시비를 만든다. 어쩌면 이 현상은 ‘닭장 속 서열’ 현상을 반영할지도 모른다. 닭장 안의 닭들은 서로를 쪼며 서열을 만들지만 그 경쟁이 닭장을 만든 주인을 향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좋은 성적, 명문대, 대기업·전문직·공기업, 안정적 고소득으로 이어지는 질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여왔다. 불평등하더라도 “공부를 잘했으니”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으니” “더 좋은 직장에 갔으니”라는 말로 차등보상을 정당화했고, 그것을 공정성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특정 산업의 슈퍼사이클이 이 질서를 흔들었다. 사회적으로 더 선망받는 학교와 직장에 갔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하이닉스 성과급 뉴스를 보며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이 믿고 따라온 비교 경쟁의 질서가 실제 보상 질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충격 때문이다.
물론 자산소득과 노동소득은 애초에 같은 방식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자산소득에는 투자 위험과 손실 가능성이 따르고, 노동소득은 조직 안에서의 직무, 성과, 기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질문은 남는다. 왜 자산의 초과수익은 시장의 결과로 쉽게 승인되는데, 노동의 초과보상은 곧바로 도덕적 자격 심사의 대상이 되는가. 문제는 서로 다른 보상 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 차이가 언제나 소유의 몫에는 관대하고 일의 몫에는 가혹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소유권 중심의 공정성 관념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했다”는 사실은 강력한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 주식을 샀으니 기업가치 상승의 몫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반면 직원의 초과보상에 대해서는 곧바로 그 기여도를 따져 묻는다. 소유의 몫은 권리로 쉽게 정당화되고, 일의 몫은 자격을 증명해야 정당화된다. 위쪽의 소유자에게 향하는 시선은 너그러운 반면, 옆쪽의 노동자에게 향하는 질문에는 날이 서 있다. 주주의 초과수익은 시장의 결과로 보고, 직원의 초과보상은 공정성과 자격의 문제로 본다. 그래서 생산직의 초과이익에 대해 사회 전체의 신경이 곤두선다. 그 틈새를 학력주의가 교묘하게 파고든다. 운에 의한 초과이익도 학력 서열에 따라 차등지급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이닉스 직원들이 얼마를 받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우리는 노동자가 많이 받는 장면에는 쉽게 분노하면서, 자본이 훨씬 더 많이 가져가는 장면에는 무덤덤한가. 한국 사회의 공정성은 정말 불평등 자체를 문제 삼는가. 아니면 ‘닭장 속 서열’을 지키는 데에만 작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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