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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음주운전변호사 그래, 이 멋이야…감추지 않는 나의 ‘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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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숭
44분전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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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음주운전변호사 “올해의 팬톤 컬러요? 우린 이미 가지고 있어요.” 색채 전문기업 팬톤이 올해의 색으로 ‘클라우드 댄서’를 선정하자 “우리 색”이라며 환영한 이들이 있다. 바로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시니어 세대다. 클라우드 댄서는 맑고 절제된 흰색이다. 팬톤은 “단순한 흰색이 아닌, 자연스러운 흰색으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듯하면서도 평온함이 가득한 고상한 흰색”이라고 설명한다. 세월을 뽀얗게 머금은 흰머리만큼 이 색을 설명하기 적확한 예가 있을까.
염색으로 적극 감추던 노화 상징자연스럽게 연출하는 이들 늘어
‘지금 나를 좋아하고 받아들인다’시니어들의 메시지 표현 매개체
흰머리 비율 따라 컬러 블렌딩한국만의 방식으로 변주하기도
흰머리를 ‘힙’하게 표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멋으로 소화하는 사람들이다. 한동안 흰머리는 감춰야 할 대상이었다. 새치가 보이면 염색약을 찾고, 뿌리가 자라면 미용실 예약을 잡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흰머리는 노화의 징후를 넘어 ‘자기관리 부족’이나 ‘노안’과 쉽게 연결됐다. 그런데 최근 풍경이 달라졌다.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거나, 기존 머리색과 섞어 세련되게 연출하는 ‘고잉 그레이(Going Gray)’가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동안 압박 대신 ‘나다움’ 찾기
한국은 유독 ‘어려 보인다’는 말을 칭찬으로 여기는 사회다.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면 동안이라 부르며, 관리를 잘했다는 평가가 따라온다. 반대로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은 무례하거나 부정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경쟁 중심의 사회 분위기도 이를 부추겼다. 채용, 서비스업, 결혼 등에서 외모가 경쟁력으로 작동했고, 젊고 생기 있는 인상이 사회적 자산처럼 기능해왔다. 세계적 규모로 성장한 K뷰티와 성형 산업, 이미지 중심의 SNS 문화가 결합하면서 ‘젊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은 더욱 강해졌다.
흰머리는 그 압박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위 중 하나였다. 새치를 염색하지 않으면 ‘관리 안 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고민이 깔려 있었다. 특히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여성의 흰머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읽히는 경우가 많았다. 2010년 캐나다 연구진이 71세 이상 여성 36명을 심층 인터뷰해 연구한 논문을 보면, 참가자 다수는 회색 머리를 ‘추함’ ‘의존성’ ‘건강 악화’ ‘사회적 단절’ ‘비가시성’과 연결해 인식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강경화 주미대사가 2017년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돼 공식 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자연스러운 흰머리를 드러낸 단정한 스타일로도 주목받았다. 한동안 감춰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백발이 오히려 전문성과 자신감, 세련된 이미지로 읽힐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퍼스널이미지협회를 이끄는 홍정화 컬러에이치 대표는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아이 같은 얼굴’이 칭찬으로 받아들여졌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나이에 어울리는 외모와 스타일을 찾으려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 들수록 ‘개성’ 살리는 사람들
변화는 시니어 세대에서 먼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더뉴그레이’에는 5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중장년 세대가 모였다. 이들은 단순히 ‘젊어 보이기’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과 분위기를 찾는다. 흰머리 역시 숨겨야 할 결점이 아니라 개성을 살리는 스타일링의 일부가 된다. 은빛 머리를 자연스럽게 살린 채 코트, 셔츠, 액세서리를 매치하고 파랑·분홍 같은 강렬한 색도 거리낌 없이 소화한다. 검은 머리로 젊음을 흉내 내기보다, 지금의 나이에 어울리는 우아함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더뉴그레이 유대영 대표는 “그레이 헤어는 단순히 머리색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이라며 “예전에는 검은 머리로 최대한 젊어 보이려 했다면, 최근에는 자신의 나이를 수용하는 멋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흰머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지금의 나를 좋아하고 받아들인다’는 메시지를 주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30·40대 역시 흰머리를 스타일 요소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오진영씨(38·가명)는 임신 기간 염색을 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기른 흰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오씨는 “출산 후에는 모유 수유를 하느라 염색을 미뤘는데, 천연 옴브레처럼 자리 잡은 흰머리가 나름 개성 있어 보여서 그대로 헤어 스타일링을 하고 있다”며 “염색을 안 하는 것 또한 개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고잉 그레이’ 스타일이 가능해진 점도 변화를 이끄는 요인이다. 서울 연희동에서 살롱리아를 운영하는 히로 원장은 2018년부터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살리는 ‘고잉 그레이’ 스타일을 소개해왔다. 획일적인 새치 염색에서 벗어나, 흰머리 비율과 모발 상태 맞춤형 커트와 컬러 블렌딩으로 다양한 흰머리 스타일을 디자인한다. 히로 원장은 “전에는 새치를 어떻게 완벽하게 가릴지 묻는 고객이 많았다면, 요즘은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살릴 수 있는지 상담하는 분이 더 많다”고 말했다.
고령화 사회, 자연스러운 변화
흰머리 스타일링은 고령화 사회의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그레이 헤어가 유행했다. 2010년대 ‘그레이 헤어’가 유행어 후보에 올랐고, 흰머리를 드러낸 여성들의 스타일북과 사진집이 잇따라 출간됐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며 중장년층이 핵심 소비층으로 떠오르자, ‘젊어 보이는 외모’보다 ‘나이에 어울리는 멋’이 시장성을 갖게 된 것이다.
유럽과 북미에서도 흰머리는 패션 코드로 소비돼왔다. 중장년 모델들이 백발 그대로 런웨이에 서고, 은빛 머리카락은 권위, 독립성, 세련미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활용됐다. 한국 역시 이런 흐름을 뒤늦게 따라가면서도 한국만의 방식으로 변주하고 있다. 흰머리를 완전히 드러내기보다 블렌딩하거나 기존 스타일과 섞어 보다 더 세련되게 연출하는 방식이다. 홍 대표는 “시니어 모델들 사이에서는 검은 머리 대신 흰머리를 개성 있게 표현해 차별성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살리려는 스타일이 늘고 있다”며 “이제는 어떤 머리색이냐보다 얼마나 자신에게 어울리게 스타일링하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배경청소년과 노인은 ‘사회적 약자’라는 단선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사회공헌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들은 저출생과 지역 불균형 발전 추세로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며, 경제활동과 돌봄을 통해 지역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이주배경청소년과 노인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다가온 미래’의 현장을 보고 왔다. 지난 2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전체의 20% 이상)에 진입한 전북 군산시와 공단지대가 있는 경기 안산시를 각각 찾았다.
성인이 된 한 이주배경청년은 간호사로 일하며 노인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은퇴한 노인들은 수십년간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이주배경청소년, 이주민과 나누고 있었다.
두 인구집단은 공공·민간 서비스 등 분야를 막론하고 소통, 상생하며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사회복지가 필요한 기관과 가정, 일손이 필요한 기업 등 곳곳의 틈을 메우고 있다.
의료 공백 메운 ‘군산 나이팅게일’
박은혜씨(30)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부터 지역 의료 현장을 지킨 7년차 간호사다. 박씨의 고향은 낙조가 아름다운 군산시 신시도다.
아버지 박병근씨(68)는 1994년 필리핀 북부 망카얀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마주친 동네주민에게 반했다. 아내 아르세니아 나세요씨(55)는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의류회사에서 옷감 품질관리를 하던 참이었다. 컴퓨터 보급 이전, 약 2200㎞ 떨어진 곳에서 1년 반 동안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1996년 결혼했다.
어부였던 ‘신시도 양관식’ 병근씨와 ‘필리핀 새댁’ 나세요씨는 두 딸을 키웠다. 박은혜씨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노인 홀로 끌던 손수레를 같이 밀어주고, 매일 아침 학교에 제일 먼저 도착해 교실 청소를 도맡았다. “도움 주면 어르신이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거나, 친구들이 칭찬하는 것에 기분 좋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작은 섬마을에선 서로 돕는 게 당연하기도 했고요.”
그늘진 기억도 품고 있다. 일부 중학교 동창은 어눌하게 말하며 박씨를 놀리거나 그의 가방을 숨겼다. 박씨는 “사람들이 다문화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안 갖게 하려고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다”며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 박씨는 아버지의 권유로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2020년 군산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시작한 박씨는 비수도권의 의료 공백을 메웠다. 한여름에도 전신 보호복과 실드 마스크, 이중 장갑을 착용한 채 환자를 돌봤다. 이후 그는 전북 전주시와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일했다.
전북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집계한 2024년 전주시와 군산시의 인구 1000명당 의사·간호사 수는 각각 4.955명(의사 3.56명, 간호사 6.35명), 3.42명(의사 2.5명, 간호사 4.34명)이다. 서울(의사 3.61명, 간호사 6.48명)에 비해 적다.
반면 두 지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8~23%에 달하는 만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높다.
박씨가 최장기인 2년7개월 근무한 곳은 전주에 있는 간호·간병통합병동이다. 간병인을 구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입원하는 병원으로, 주로 노인들이 입원한다. 박씨는 이곳에서 하루 평균 12명의 환자를 돌봤다.
“제 맨얼굴을 보고 ‘까맣네’라고 말씀하신 어르신도 계셨어요. 엄마가 필리핀인이라고 밝히면 ‘그래? 내가 말실수했네’라고 받아치셨죠.”
심리적으로 극한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반복됨에도 박씨는 버텼다. 일을 시작한 첫해, 수술방에 누운 환자가 죽음의 문턱에 도달한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의료진의 처치로 중증환자가 회복하는 상황을 여러 번 보면서 간호사로서 소명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두 나라의 문화를 접하며 자란 박씨의 배경은 환자를 대할 때 도움이 됐다. “꾸마인 까 나 바(식사는 했나요)?” “살라마토(감사합니다)”라며 어머니로부터 배운 타갈로그어(필리핀 공용어)로 말을 건네거나, “우리 엄마도 필리핀 사람”이라고 알리면 이주민 환자들은 긴장을 풀었다.
박씨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병간호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일을 그만뒀다.
두 딸에게 진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아내에게 다정히 한국어를 가르치던 그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말수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무표정으로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군산 시내에 사는 박씨는 매일 아침 아버지를 요양센터로 데려다준다. 병원에도 동행한다. 그는 간호사에서 환자 보호자가 되어 근무했던 병원을 다시 찾게 됐다.
나세요씨와 박씨의 동생은 신시도에 남아 숙박·요식업을 하며 생계를 맡고 있다. 한국어 한마디 하지 못했을 때 타지로 왔던 나세요씨는 이제는 한국 요리 달인이 됐다. 남편을 세심하게 간병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시험도 준비 중이다. 문제집에는 ‘비가역적 진행’ ‘잔존능력 저하’ 등 어려운 용어투성이다.
나세요씨는 한국 사회에서 요양보호사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이민자의 시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세요씨도 한 차례 시험에서 떨어졌다.
요양보호사 실습을 했던 나세요씨는 “아픈 환자들이 욕하면서 함부로 말할 때도 있었다. 간호사들이 얼마나 힘든지, 딸의 마음을 많이 느꼈다”며 “그래도 성격이 밝은 은혜에겐 이 직업이 딱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항공승무원, 사회복지사가 되길 꿈꾼 박씨는 지금도 하고 싶은 게 많다. 구급대원에도 도전해보고자 틈틈이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 부닥친 환자를 가장 먼저 처치하는 역할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 역시도 가족센터나 이웃들의 도움을 받고 자랐습니다. 지금은 다문화청년들이 노인을 돌보고 있고, 언젠간 이들도 노인이 돼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오겠죠?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대기업 이 과장’에서 한국어 선생님까지
안산에 있는 한 아파트 건물 상가에는 ‘고려어학원’이란 특별한 교실이 있다. ‘설 연휴에 무엇을 하고 보냈나요?’ “17일 에버랜드 있었어요. 그리고 16일 친구와 놀았어요.”
마리아양(15·가명)이 또박또박 대답하자 같은 반 친구들이 손뼉을 쳤다. 러시아에서 온 그는 고려인의 후손이다.
지난 2월19일 오전 10시50분, 교실에 있던 6명의 학생은 15~17세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온 중도입국 이주배경청소년이다. 모두 고려인 4~5세다. 2019년 세워져 유치부부터 11학년이 다니는 이 대안학교는 5월 10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이덕근씨(68)는 이곳에서 평일 하루 3시간씩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2024년부터 출근한 그는 올해 3년차 교사다. 이씨의 2월 월급명세서에 찍힌 실수령액은 73만100원. 급여는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기관 등이 지원한다. 10개월 계약직으로, 매년 재신청할 수 있다.
안산은 외국인 인구 비중이 약 13.3%를 차지하는 글로벌 도시다. 1990년대부터 이주노동자들이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로 몰려들었다. 단원구 원곡동 일대는 2009년 다문화특구로 지정됐다.
단원구 선부2동에는 고려인 정착촌인 떼꼴마을이 있다. 이곳 부모들은 대부분 반월·시화공단으로 출근한다. 일부 부모들은 러시아어를 쓰는 친구들이 모여 있고, 러시아어와 한국어, 수학 등 과목을 두루 배울 수 있는 고려어학원으로 자녀를 보낸다. 학비는 월 35만~50만원이다.
이씨는 지인으로부터 단원시니어클럽에서 ‘다문화 분야’ 일자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서류 심사와 2차례에 걸친 면접을 통과했다.
그가 이주배경청소년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2015년 시작한 교회 봉사활동이었다. 이주민과 병원에 동행하거나,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피해 신고를 도왔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받는 이씨는 생계 목적보다는 이주배경청소년의 자립을 돕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원시니어클럽은 공익활동(16개), 역량활용(17개), 공동체사업단(18개) 등 분야 일자리에서 노동자를 매년 구하고 있다. 올해에는 2014명을 모집했다. 장애인, 노인, 아동 등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있는 곳곳에 노인들이 배치된다.
이씨에게 교사 일은 쉽지만은 않다. 대부분 학생은 기초 한국어조차 모르고, 수준이 학생마다 천차만별이다. 일부 교사들은 파워포인트(PPT)로 수업자료를 만들지만, 이씨는 ‘효율이 나지 않아’ PPT 제작을 안 했다. 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컴오피스의 한글을 사용하던 ‘얼리어답터’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 365 프로그램은 익숙지 않다.
‘58년 개띠’인 이씨는 서울 성북구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어학을 전공했다. 1989년 입사한 한화그룹 계열 삼희관광이 첫 직장이었다. 당시 여행사들은 1992년 중국 수교를 앞두고 현지 관광상품 개발에 몰두했다. 이씨가 있던 팀은 지린성 광개토대왕릉비를 방문하는 고구려 역사 기행 상품을 만들었고, 그는 실크로드를 따라 한국 학자들을 인솔하기도 했다.
과장 직함을 달았던 이씨는 회사를 관두고 삼성전자 컴퓨터를 사업장에 직판하는 매장을 열었다. 그해는 1997년. 외환위기가 한국을 덮쳤고 이씨는 얼마 못 가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지인 사업을 돕다가 2002년 안산시에 정착했다.
이씨의 수첩에는 학생들의 꿈이 적혀 있다. 영어 선생님, 통역사, 변호사, 엔지니어… “2024년 처음 왔을 때 한국어를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애가 있었어요. 화성시 어천역에서 여기까지 매일 왔죠. 꿈이 물리학자이고, 한국에 남겠대요.”
그는 한국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주배경청소년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또 이주배경청소년이 언어 장벽을 넘어야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한국말을 못해 일을 구하지 못하다가 사고를 치는 이도 있었다”며 “이 친구들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힘들고 여럿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늦은 시간에서야 퇴근하는 중도입국 이주배경청소년의 부모는 자녀 교육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비정부기구인 기아대책이 지난해 7월 15~29세 이주배경청년·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0%가 ‘학창 시절 친구들만큼 학교생활이나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한국의 환경이 낯설고 익숙지 않아서’(25%),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서’(24%), ‘사교육을 받지 못해서’(19%) 등을 꼽았다.
“가르치는 건 내 인생 최고의 기쁨”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김태호씨(67)는 2024년부터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에서 학생들에게 일본어·영어를 가르쳤다. 초등학생부터 중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선주민과 이주민, 이주배경청소년 등이 찾았다.
그는 자동차부품 제조회사에서 35년간 품질관리, 해외영업, 제품개발 등을 해왔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발레오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영어 등 어학능력을 쌓았다. 정년퇴임 이후 그를 기다린 건 우울감과 불면이었다. 그러다 ‘제2의 삶’을 살면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김씨는 “전 직장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은 내 인생 최고의 기쁨”이라며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과 봉사를 통해 내 안에 있는 사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도서관이 다문화 커뮤니티의 중추적 역할을 하길 기대했지만, 안산시 예산이 끊기며 도서관은 지난 3월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 일을 하면서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 혐오를 많이 느꼈죠. 이젠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류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하는 공간이 중요해요.”
요즘 언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다루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억대 성과급이 얼마인지, 두 회사 보너스가 몇배 차이 나는지, 파업 가능성과 이직 러시가 어떤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기사 대부분이 “누가 얼마 받았나”를 세는 사이, 이 두 수출거대기업이 한국 경제와 사회에 만들어내는 구조적 변화는 충분히 조명되지 않는다. 기업 간·기업 내 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그나마 일부 다뤄지고 있다. 정작 잘 다뤄지지 않는 것은, 수출거대기업 체제가 한국 시장경제의 조정 방식, 정치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삼전·하이닉스는 한국 사회 수출거대기업 체제의 상징이다. 두 회사의 반도체 매출 대부분이 해외 데이터센터·빅테크·클라우드·스마트폰 업체에서 나온다. 그래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오면 수출·투자·세수가 동시에 좋아지지만, 사이클이 꺾이면 같은 경로를 따라 모두 식는다. 충격의 원인은 한국 내부가 아니라 미국·중국·유럽의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글로벌 금리, 지정학 리스크다. 한국 경제는 점점 “우리가 어찌해볼 수 없는” 외부 사이클에 더 크게 좌우되는 구조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전통적 통화정책도 수출거대기업의 반응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국내 금리를 내려도 두 회사가 글로벌 수요만 보고 투자를 정하면 경제성장률은 크게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금리를 올려도 막대한 내부유보와 해외 조달능력이 있는 두 회사는 투자 계획을 유지하고, 대신 중소·내수 기업만 자금난을 겪을 위험이 있다.
반도체 감세 역시 삼전·하이닉스가 이미 짜둔 투자 범위를 바꾸지 못하면, 기대만큼 성장률도 늘리지 못한 채 재정 여력만 깎일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역할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국내에 미치는 충격을 완충하는 것”이어야 한다. 호황에 반도체 세수 재원을 충분히 확보해 늦지 않게 정부가 꼭 해야 하는 일에 돈을 쓰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반도체 경기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일 잘하는 정부의 모습이다.
여기서 중요한 인식 전환이 있다. 삼전·하이닉스의 거버넌스 리스크는 더 이상 “회사 고유 위험”이 아니라 한국 전체가 떠안는 “시장 위험”이다. 두 기업의 의사결정이 개별 종목의 주가를 넘어, 코스피·환율·연금·세수·성장률까지 함께 흔드는 것이다. 두 기업의 자본적 지출이 투자·수출 등 경제성장률을 움직이고, 내부통제 실패는 주가 급락으로 이어져 국민연금, 가계자산까지 동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또, 지금 우리는 두 기업의 성과급 결정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영향력을 목도하고 있다. 즉, 개별 기업의 의사결정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웬만한 정부 정책 못지않은 구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규제기관·언론·시민사회 등은 이들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회사”로 보고 시장안정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반면, 삼전·하이닉스 경영진은 “잘난 놈 건드리지 마라”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
정치에서도 두 수출거대기업의 무게는 매우 무겁다. 노동·복지·기후·지역균형발전 같은 의제가 공존해야 하지만, 실제 정치 일정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언제나 “반도체 경쟁력”이다. 여야는 세액공제·규제완화·전력지원을 경쟁적으로 약속하고, 총선·대선 때마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지원 조건이 지역 공약의 핵심 소재가 된다. 두 수출거대기업은 단순한 경제주체를 넘어, 정책과 선거의 어젠다를 사실상 함께 설계하는 정치 행위자가 된 셈이다. 이런 정치적 영향력은 언론 광고, 포럼 후원, 연구용역, 각종 협의체 참여, 대관 활동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행사된다. 기업의 직접 정치자금 기부는 금지돼 있지만, 경제력 집중이 클수록 수출거대기업이 입법·규제 과정에 투입하는 돈·인력·시간은 다른 이해당사자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결과 법과 제도가 수출거대기업의 부담은 줄이고, 나머지 경제주체의 부담은 늘릴 위험이 있다. 이때 규제기관·언론 등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수출거대기업의 힘은 지속 가능한 성장과는 거리가 먼, 경기변동과 K자 성장을 키우는 증폭기로 바뀐다. 세계 반도체 전쟁 담론에 휩쓸려 세제·규제가 과도하게 풀리고, 나중에 정신이 들면 “K자 회복과 성장”을 비판하지만, 그때쯤이면 제도는 이미 친수출거대기업 방향으로 굳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삼전·하이닉스를 선악의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 두 수출거대기업의 영향력이 우리가 생각해온 “수출 잘하는 국가대표 대기업”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수출거대기업의 강하고 다층적인 힘은 이제 투명한 규칙과 견제 장치 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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